추억을 기록하는 방법

  • 사진으로 한번쯤 이야기 하고 싶었던걸 정리했는데······ 시간은 대략 입사 후 1년 어드메 정도. 느긋합니다.

 

다자이는 남들이 생각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을 한번에 연산할 수 있는 두뇌의 소유자였다. 적어도 ’다자이 오사무’ 라는 개인으로 명명된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그래왔다. 쉽게 잊는것도 허락되지 않은 기억력으로 더듬어봐도 무척 예전이라는 것만 어렴풋이 떠오를 정도로. 21년, 길다고는 할 수 없는 생이지만 평범한 요코하마 시민의 곱절은 되는 일들을 경험한 다자이는 웬만한 일에는 당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예상했던대로의 일들 뿐이라 시시할 정도다. 일일이 파락대는 ‘선배’ 의 반응은 매번 잘도 이렇게 놀랄 수 있는구나 싶어 신선하고 즐겁긴 했다. 당사자가 들으면 당장에 멱살을 잡히겠지만 그 반응조차도 다자이의 예상범주였다. 어제까지로 71전 71승, 오늘은 또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기대하면서 출근시간을 훨씬 지난 점심시간 즈음에서야 느긋하게 탐정사무소의 문을 연 다자이였는데,

“늦어!”

허스키톤의 노성 대신 다소 앳된 목소리가 질책해오는건 예상밖의 일이었다. 주머니에 넣고 건들대던 자세를 바로하며 다자이는 눈을 크게 떴다.

“······란포 씨?”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라 실망했겠지만 그 전에 할 말이 있잖아.”

매사 엄격한 것치고 다자이의 농간에 자주 놀아나는 선배(이자 파트너)와 다르게 한번 잡은것은 놓치않는 철저함이 돋보였다. 시선은 머리 하나 정도 낮지만 상대는 엄연히 자신보다 연상이고 탐정사의 또 다른 ‘선배’ 이기도 했다. 다자이는 잠자코 머리를 숙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뭐때문에 죄송한지는 알고 말하는거야?”

“······.”

쉴새없는 공격에 다자이는 드물게도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새삼스럽게 이 선배와는 상성이 나쁘다는걸 느낀다. 단순히 수싸움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어느쪽인가 하면, 철없는 어린아이가 어떤 악의나 호의도 가지지 않은 칼을 휘두르고 보는 것과 같은 제멋대로인 점이 말이다. ‘선배’ 에 대한 다소 불손한 감상을 감추듯 다자이는 고개를 흔들며 두 손을 번쩍 들어보였다.

“이 짧은 시간에 벌써 두 번째 판정패라니, 역시 란포 씨는 다르네요.”

“당연하지. 나는 세계 제일의 명탐정인걸.”

자칭하기는 다소 거만하다 싶을 발언도 이 남자에겐 무척 잘 어울렸다. 반론의 여지없는 사실에서 나오는 설득력이기도 했다. 아, 그렇죠. 다자이가 진심으로 긍정하자 그제야 눈앞의 얼굴이 히죽 웃었다.

“순순히 자백했으니 봐주기로 할까.”

“배려에 감사 드립니다··· 라는건, 제가 놓치고 있는 일이 있다는거군요.”

“이미 일주일전에 나오미가 메일을 보냈지만, 그 날도 입수하느라 핸드폰을 망가뜨린 너는 메일을 확인하지 못했겠지. 오늘은 탐정사 단체사진을 찍을 예정이니 13시까지는 역전 사진관에 모여달라는 중요한 소식을 말야.”

“······사진, 이요?”

“응, 매년 봄에 있는 연례행사야.”

다자이의 표정이 급격하게 흐려졌다. 일련의 흐름이 예상치 못한 전개이기는 했으나 이 순간 다자이는 진심으로 당황하고 있었다. 그것도, 단체 사진이라니······ 생리적인 거부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제 생각 정도는 손쉽게 추리할 수 있을 ‘세계 제일의 명탐정’ 은 얄밉게도 다자이의 사정같은건 아랑곳없이 말을 잇는다.

“사정 모르는 네가 이렇게 집합시간 30분을 남겨두고 어슬렁어슬렁 사무실로 올 것을 알았으니까 이 몸이 특별히 기다라고 있었다고. 알았으면 일단 뛰기로 할까?”

지금부터 뛰면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야. 등을 떠밀리기 시작한 다자이는 힘으로 버티며 반발했다.

“잠, 잠깐만요······ 란포 씨 저는 사진 같은건,”

“어차피 영정사진도 찍어야 하니까 겸사겸사 간다고 생각해.”

“—영정사진이요? 제 나이에 영정사진이라니 너무 빠른거 아닌가요!?”

“네가 그런말 하니까 엄청 안어울려. 쿠니키다 같은 딴지를 거는거 신선하긴 한데.”

온몸으로 거부하는 다자이와 힘싸움을 하기도 귀찮아 졌는지 명탐정은 무례하게도 그의 엉덩이를 신발로 뻥 차버렸다. 좁은 드럼통에 거꾸로 들어갈 수 있을만큼 유연하기는 해도 단련에 힘쓰지 않아 상대적으로 힘이 부족한 다자이는변칙적인 공격에 그만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명탐정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다자이의 완전히 밀어내는데 성공했다. 비쩍 말랐다곤 하나 보기보다는 탄탄한 체격인 다자이가 20센티 이상 차이나는 남자에게 밀쳐지는건 아무리 방심했다 해도 살짝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 일이었다.

“란포 씨, 이건 너무······.”

“네가 무엇을 꺼리는지 난 몰라. 하지만 사진도, 무덤도, 유서도. 결국 남은자들 위한 기도고 추억이며 위로일 뿐이잖아.”

낮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이 귀에 박히자 다자이는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특무과가 엄선한 이능력자의 조력으로 제 기록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새하얗게 표백되었어야 할 과거가 쉽게도 떠올랐다. 조용해진 다자이를 응시하며 명탐정이 말을 잇는다.

“모두가 너처럼 좋은 머리로 모든것을 행위로 기억하지는 못해. 인간은 결국 남은 흔적과 기록만으로 누군가를 추억할 수 밖에 없으니까 말야. 적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 너도 이왕 탐정사에서 일하는거면 이렇게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셈 쳐.”

소년같은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타이르는 말투가 생각보다 위화감이 없었다. 드물게 그가 연상이라는걸 느낄때가 있는데 지금이 바로 그런 때였다. 무심코 경청하며 긍정하고 있는 자신을 깨달은 다자이가 쓴웃음을 지었다.

“오늘의 저는 명탐정의 추리쇼의 게스트였군요.”

“바—보. 이건 추리도 못되는 일반론일 뿐이야.”

“에?”

다자이의 얼빠진 반응에 그는 아무것도 없는 콧등을 툭툭 쳤다.

“안경을 안썼잖아.”

「초추리」 같은 건 할 수 없다고.

산뜻하게 마무리 해버린 에도가와에 다자이도 그런 셈 치기로 했다. 속아주는게 자신이라는 최소한의 자기위안도 없으면 일방적으로 당한 입장에서는 억울하니까. 혼자서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자 에도가와가 볼멘소리를 냈다.

“괜한 이야기로 쓸데없는 시간을 너무 낭비했잖아. 다자이, 이 빚은 톡톡히 받아낼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일단 뛰어!

에도가와가 경쾌한 구둣발 소리를 내며 계단을 구르듯 내려가기 시작했다. 홀로 남겨진 다자이는 이대로 도망가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고민은 잠깐이었다. 선배들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신입’ 된 도리는 아니니까. 다자이는 걷어차였던 엉덩이를 문지르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분명히 예상했던 익숙한 노성일게 뻔한데, 이상하게도 가슴 한켠이 간질간질한 이 감각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4件のコメント

최고…… 선생님 최고예요 일개 구독계인데 쌍벽 관계성 정말 좋아하지만 란뽀 캐해가 깊지 않아서 둘이 대화하는 장면 상상만 하면 탁 막히는 기분이었는데 이거 완전 제가 사랑하는 가장 완벽한 쌍벽의 대화예요 감사합니다… 너무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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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プリカ

안녕하세요, 어렵죠, 천재들의 머릿속이란; 자주 붙이고 싶은데 그래서 더 어려운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아끼는 주제라 언젠가는 좀 정리하고 싶었기도 하네요. 이런곳에 감상이 올거라는 생각조차 못해서… 정말 놀랐고 한편으로는 조금이나마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었다니 기쁘네요. 감상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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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미

아니 진짜 너무 좋아요… 레플리카 님은 천재신것같아요…
다른분도 말씀하셧지만 이렇게 완벽한 란포와 다자이는 처음봐서 읽는 내내 망치로 뒷통수를 맞는 것 같았어요 너무 좋고 재밌어서요…
어떻게 이런 글을 쓰시지? 레플리카님이 써주신 다자이와 란포가 너무 좋아서 진짜 눈물날것같아요…
하… 진짜 감사합니다… 왜 이거 지금 읽었지 지금 묺생 손해본 기분이에요 정말 글써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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レプリカ

안녕하세요 다미님 T▽T! 너무 늦게봐서 죄송합니다..(리플 알람은 자동이 아니라) 부족한 글에 좋은 말씀만 해주셔서 몸을 배배꼬고 있는데······ 어려울 뿐이지 두 사람으로 이런저런 이야기 많이 하고 싶은 편이에요. 천재랑 천재란…? 이라는 점이 어렵지만요. 다시 한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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