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r.

 

녹슨 간판에 허름한 문을 한 가게는 술집이 즐비한 골목에서도 가장 후미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알고 찾아온다 해도 선뜻 문을 열기 힘들정도의 초라한 입구였으나 남자는 주저없이 손잡이를 잡아 돌렸다. 문이 열리자 모습을 드러낸 건 밖에서 보이는 보다는 멀끔한 인테리어의 고즈넉한 카페였다.

카페라고 해도 취급하는 메뉴는 커피나 음료 종류보다는 칵테일과 술이 더 많고, 식사(겸 안주)에 준하는 일부 메뉴도 제공되곤 했다. 기본적인 음료는 모두 취급하나, 식사류는 그날그날 들어오는 재료와 마스터의 컨디션에 의해 결정되는 ‘오늘의 메뉴’ 같은 것이다. 당연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날도 있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제멋대로인 가게가 어떻게 살아남나 싶겠지만 수익을 바라고 운영하는게 아니라는걸 여기에 오는 모두가 알았다. 일단은 가게 이름부터 케세라세라 Que sera sera다.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는 않았고 마스터 역시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의미가 없다 싶지만······.

반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으면 삐걱대는 소리가 울렸다. 카운터를 겸하는 바bar에서 컵을 닦고 있던 마스터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먼저 인사를 하자 마스터도 무뚝뚝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스테이지가 비어있네.”

“오늘도 비어있는 거죠.”

귀염성 없기는. 마스터의 볼멘소리를 뒤로하고 남자는 천천히 걸었다.

카페의 한쪽 벽에는 가게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단상이 붙어 있었다. 남자는 어깨에 둘러 멘 짐을 내려놓고 가까운 테이블에서 의자를 끌어내 위로 올리고 자신도 단상위로 올라섰다. 단상에 서서 가게를 스윽 둘러보면 확실히 사람대접과는 어울리지 않는 가게라는게 더욱 잘 느껴졌다. 테이블은 몇 개 없는데 그마저도 작고 협소하고, 의자는 덜컹거리는 접이식 철제였다.

“······다시는 연주하지 않을거라더니.“

무슨 심경의 변화냐. 어느 새 닦던 컵을 내려놓은 마스터가 단상 앞에 삐딱하게 서 있었다. 위치탓에 미묘하게 시선이 어긋난다. 남자는 머쓱하게 뺨을 긁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나이를 먹고 능청떠는 것만 늘었구나.“

대답대신 남자는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케이블을 연결하고, 스위치를 올린다. 잠시 기다렸다 볼륨을 체크하고······ 너무 오래전 일이라 완전히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버릇은 어디 못준다고 했던가. 한참을 만지작대던 남자가 겨우 의자에 앉았다. 숨이 죽어 엉덩이가 배기는 좌석에 인상을 찌푸렸다.

“의자정도는 바꿀 생각 없어요? 싸게 알아봐 줄 수 있는데.”

“그게 싫으면 안오면 될게 아니냐.”

예상대로의 대꾸였다. 마스터와 으레 주고받는 교환으로 딱히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성질을 긁어 출입금지를 당하기라도 하면 곤란한 것은 자신이다. 어깨를 한 번 으쓱한 남자는 기타를 쥐었다. 거의 연주하지 않았다 해도 세월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은 덕분에 그렇게까지 못봐줄 꼴은 아니었다. 검은 바디가 조명을 받아 반짝였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고ㅡ 내뱉는 호흡에 천천히 기타줄을 긁었다.

”———“

20여년 만에 잡은 기타인데도, 여전히 그 선율에 영혼까지 떨림을 실감한다.

말랑해진 손끝이 욱신거리는 아픔마저도 사랑스럽다고 느끼며, 남자는——오오가미 반리는 눈을 감았다.

*

”반.“

”······유키?“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시달린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을 앞둔 반리는 멀뚱멀뚱 눈을 깜박였다. 너무 지친탓에 헛것을 보고 있는 걸까, 고민하고 있으면 희게 뻗은 손이 다가와 볼을 꾸욱 잡아 당긴다. 실감나는 아픔에 이게 헛것은 아니구나 싶다. 아야, 고통을 호소하자 밉살스런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다.

”무슨 용건이야? 연락도 없이 찾아와서는.”

빨갛게 부어오를 듯한 뺨을 문지르는데 집중하자 시선이 한층 더 매서워졌다.

“그걸 몰라서 묻는거야?“

”모르지, 당연히······.”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냐. 아직 퇴근전의 다른 사무원들이 남아있음을 상기하며 반리는 높아지려는 목소리를 꾹 눌러 참았다.

오리카사 유키토——오오가미 반리의 오랜 동창이고, 친구이며, 후배이자——현재는 리바레Re:vale의 유키로 활동중인 명실상부 탑 아티스트이자 아이돌이다. 유키를 정의할 수 있는 수식어는 여러가지가 있으나 그 중 하나만 꼽으라면 ‘천재’ 라는 점이 가장 먼저 올 선택받은 인간이다. 재능뿐만 아니라 외모마저도 타고난 덕에 현재 3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건재했다. 한창 때의 날카로운 분위기는 아니지만, 원숙미가 더해진 미남은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곤 했다. 인성은 여전히 나잇값을 못하고 있다 싶지만······ 겉모습만은 재수없을 정도로 잘생겼음을 반리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나한테 할 말 없어?”

“없어.”

“정말로?”

”그래.“

”정말로, 없다고?“

“——유키 너, 다짜고짜 남의 직장에 찾아와서 이러는게 민폐라는 자각은 있어?“

끝없이 반복될 것 같은 선문답에 싫은 예감이 들어 반리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래도 유키의 기세는 누그러들지 않았다.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반이 나쁘잖아.“

”그러니까——“ ”——요즘 기타 치고 있다는거, 왜 말 안했냐고.“

정곡을 찔린 반리가 순간 움찔했다. 망설이는 틈을 놓칠새라 유키가 더 집요하게 따지고 들었다.

”내가 알면 싫어할 거 같았어? 아님, 더 이상 안한다고 쿨한 척 떠들고 이러는게 구질구질해 보일 거 같아서?“

”······그런거 아냐.“

”아니면 뭔데?“

”······.“

”대답 못한다는건 둘 다 인거네. —정말, 웃겨. 그게 뭐라고.“

”그게 뭐냐니, 너 말을 너무···.“

막하는게 아니냐고 따지려다 그만뒀다. 요즘에야 아무데서나, 아무한테나 마구 말을 내뱉지는 않는 유키였지만 반리는 그 배려대상에서 제외인 몇 안되는 인물이었다.

”——저희는 먼저 퇴근할게요. 오오가미 씨, 전기점검 잘 부탁드려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듯 나머지 사무원들이 재빨리 짐을 챙겨들었다. 후다다닥 뛰어나가는 발걸음 소리가 완전히 잦아들고서야 반리는 겨우 입을 뗐다.

”말을 할 타이밍이 없었을 뿐이야. 굳이 말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아이돌이라는 꿈을 포기하고 그 시절 유키토의 옆을 떠나기로 결정한 그 순간부터, 재회까지의 모든 심정을 다 이야기 하자면 하룻밤을 꼬박새도 모자랄터였다. 하지만 반리는 구구절절한 과거회를 할 생각은 앞으로도 없었다. 그럴거였다면 애초에 그를 두고 떠난다는 결정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회를 할 때까지만 해도, 그 이후로도 꽤 오랜 시간동안 오오가미 반리가 음악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

하지만 또 시간이란게 흐르면서 그 떄의 감정도 결심도 마모되고 변하기 마련이다. 좀 더 정확히는, 묻어두었던 상자를 이제는 열어봐도 좋은거다 싶은 때가 지금이었을 뿐이었다. 오오가미 반리는, 음악을 사랑한 사람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이 모든것을 지금의 유키에게 이야기하는게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도 진심이었다.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그냥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어쨌든 오리카사 유키토는 가장 오랜 시간을 나눈 유일한 친구였으므로.

그냥, 그런거야.

조용히 읊조리는 반리의 말을 들은 유키가 서슬 퍼렇게 치켜 뜬 눈을 조용히 내리깔았다. 한참동안 이어진 침묵끝에 유키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여전히 이럴 때 말을 고르는게 서툴렀다. 품속을 뒤적거린 유키가 냅다 반리에게 무언가를 집어던졌다. 반사적으로 잡아내고 보면 딱딱하고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느껴진다. 그건 확인할 필요도 없이 어딘가의 열쇠였다.

“기타 치고 싶으면 적어도 내 스튜디오에 와.”

”······유키.“

”——다시 한번 더 그런 구질구질한 지하에서 이상한 변장하고 치다가 걸리면 가만 안 둘 거니까.“

으름장을 놓는 유키에 반리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내 부모님이라도 되냐.“

”말대꾸 하지마, 반. 잘못한게 누군데 뭐가 이렇게 당당해?“

”네, 네 —— ······고마워, 유키.“

”고마운 줄 알면 좀 잘해.”

*

이후, 한 줄의 멘트와 함께 유키의 SNS에 한 장의 사진이 투고되었다.

With. DEAR ——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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