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 25/27

  • nkhr+dzi (연령조작)

대답도 없이 고개만 까닥이는 작은 머리를 따라 검은 머리가 찰랑거린다. 속눈썹이 길면 뺨에 그림자가 진다는 것을 그는 처음 알았다. 빈정 상하지만 어디서 타고 난 놈인지 면상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가는눈이 살짝 치켜 올라가서 첫 인상이 사나워보이는 점이 있다해도 말이다. 유일한 오점은, 이 꼬마의 속 내용물이 아주 생거지 같다는 점인데 그런 감점을 받았음에도 아이는 잘생겼다. ······더할 나위없이 배알 꼴리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이젠 그만 좀 도망가라. 장난 좀 친 것 가지고 화내지는 않을테니까. 길을 잃으면 곤란하잖아?"
"나는 길 안 잃어. 바보가 아니니까."
"······아, 그래."
피식 웃는 얼굴에 악의는 없을거라 생각하는데도 열받는건 어쩔 수 없다. 지끈거리는 이마를 누르며 나카하라는 한숨을 쉬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상대는 아이다. 그래, 어린애. 다른말로 꼬마.
머리위로 걸레 빤 물이 든 양동이를 떨어뜨리고 돌아 선 사이에 부엌 주방기기를 모조리 뒤엎어놓고 창고에 들어간 사이 문을 걸어잠궈 사흘간 굶주린 생쥐와 친목을 쌓게 만들었다 한 들 그건 모두 애가 한 짓이다. 귀여운 어린 아이의, 조금은 짓궂지만 악의는 없는 장난. 귀엽지 않은가. 이 모든것은 아직 순수함을 가지고 있는 어린아이만이 해낼 수 있는 발상.........은 개뿔.
타겟이 되는 자신의 비참함으로 말하자면 누님에게 선물받은 자켓을 찢어먹고 자다가 책더미에 깔려 죽을 뻔 했으며 오늘은 귓가의 머리카락이 10센티나 잘려나갔다. 온 몸에 생긴 타박상은 일일히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부탁이든 뭐든 상대가 나잇살이나 좀 먹은 놈이면 으름장을 놓거나 주먹다짐을 해서라도 버릇을 고쳐놓을텐데. 자기 반토막도 안한 꼬맹이를 상대로 뭘 어쩌란 말인가. 나도 성격 많이 죽었구나. 하릴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나카하라는 다시금 웃어줄 수 밖에 없었다. 설마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까.

"다자이."
"?"
"형이 마음에 안드니까 이런 살인 미수를, 아니 장난을 치는거지?"
"당연하지."
"···넌 일단 솔직함이라는게 경우에 따라 독이 된다는 걸 배워야겠다. 그럼 이 형의 어디가 마음에 안드는거냐?"
"얼굴."
뱉는놈도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등급으로 따지면 흡연자의 가래급이다. 그는 이제는 화가 나는게 아니라 울고 싶어질 지경이라는 것을 자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못생겨서 미안하다. 하지만 말야 내 얼굴이 어떻든간에 난 너를 부탁받은 몸이고-"
"돈 받잖아."
"영특해서 좋구나... 그래, 고용된 몸이지."
"응?"
"그러니까 너를 돌봐야 할 의무가 있다고. 돌본다는 건 의식주에 불편함이 없도록 생활 전반을 맡아 책임져 준다는 의미도 있지만 네가 훌륭한 어른으로 자라게끔 돕는다는 의미도 있는거야."
"······어른?"
"그냥 어른 말고, 훌륭한 어른. 너는 일단 인간다운 인간부터 목표로 삼자. …아니 이건 혼잣말. 어쨌든 간에."
"훌륭한 어른은 어떤건데?"
"뭐?"
"훌륭한 어른은 어떤거냐고."

똑같은 말을 다시 한번 또박또박 읊어내는 아이의 얼굴은 당연하게도 어렸다. 고개를 조금씩 갸웃거리면서도 아이는 얌전히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방금전까지 아이를 놓고 진지하게 죽겨 살려 싶어했던 자신이 머쓱해질만큼 천진난만한 모습에 나카하라는 약간 머쓱해졌다.

"음... 그러니까 일단은,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할 줄 알아야지. 자신의 귀함만큼 타인의 귀함을 알고 - 그래, 무분별하게 타인을 상처입히는 제멋대로인 나쁜 애는 결코 훌륭한 어른이 아니지.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게 중요해... 라던가. 알겠어?"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알아주겠지. 별 다른 생각없이 꺼낸 말이 만족스러운 방향으로 이어진 것을 흡족해하며 나카하라는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꽤나 진지한 얼굴을 하고 뭔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다가 몸을 일으켰다.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는 작은손이 마냥 분주하다. 아직은 통통하고 짧은 손가락.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 그 작은 놀림을 멍하니 바라보자, 얼마 안 가 아이의 눈길이 다시 그를 향한다. 아이는 특정 손가락을 세우고는 해맑게 웃었다.
"웃기네. 너나 잘해, 싱거운 놈."

———나카하라는 웃었다. 웃으며 저주했다.

망할 교수안경.
나더러 이딴 걸 어떻게 키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