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 3/27

남자는 조심스레 카페의 문을 열었다. ABC 카페. 평범하게 보기에는 그저 알파벳의 첫 세 글자를 나열한 이름이었으나 그걸 소리나는 대로 읽으면, 아베쎄─Abaissé라는 단어가 되었다. 불쌍한 자들. 비천한 자들. 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일컫었다. 우리는 아베쎄의 벗, 불쌍한 자들의 벗이라고. 한 걸음 내딛자 왁자하지만은 않은 소음이 확 끼쳤다. 따스한 노란색 조명이 몸을 덮었다. 평소 긴장같은 건 잘 하지 않는 성격이면서도, 괜히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다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적다고는 말할 수 없을 사람들이 제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각자 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반쯤 뜬 눈으로 살짝 눈매에 힘을 주고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었다. 리더는 어디 있지. 이미 인상착의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있음에도 그걸 현실에서 구별하기란 힘든 일이다. 그렇게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자니 누군가 제게 다가왔다. 뒤에서 제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손에 흠칫 놀라 남자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선글라스로 가려진 탓에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남자가 조금 경계심 띤 말투로 제게 물었다.

“못보던 얼굴인데?”

“아, …….”

남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흰 목울대가 움직이는 걸 빤히 보며 남자는 참을성 있게 이방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윽고 낯선 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 아베쎄의 벗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

“저도 함께하고 싶어…습니다.”

“좋아, 신입이라는 말이지.”

수없이 연습했던 문장이었다만 미세한 목소리의 떨림을 제가 말하면서도 남자는 알아챘다. 허나 그 떨림은 아주 작아, 남자의 당차다 못해 뻔뻔한 태도에 반쯤 묻혔다. 자신보다 훨씬 어려보이는 남자에게 어설프게 존댓말을 덧붙인 이방인의 말에도 남자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눈을 들어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장난스럽게 입가를 휘어보인 남자가 선글라스를 바로 잡으며 씩 웃었다.

**

“─창고에 생각 외로 총탄이 제법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한 사단 정도 분은 될 듯 합니다.”

“공급원은?”

“대강 지역은 파악했습니다. 그 주변에 대장간이 많긴 하지만, 위치를 적어 보낼테니 당장 그 주변까지 모조리 가압조사로 잡아들여서 공급을 끊는 게 현명할테지만…”

카페와는 조금 떨어진 비좁은 거리 한구석이었다. 오다는 조곤조곤 새어나가지 않을 작은 소리로 제가 얻은 정보들을 읊었다. 주변과 섞이는 복장을 한다면서 괜히 제국경찰복이 아닌 ─ 물론 경찰복을 입고 왔으면 곤란하기는 했겠지만 ─ 서민의 옷을 입고 나온 그가 괜시리 어색해 오다는 자꾸 남자를 흘끔거려야만 했다. 정작 정말로 잠입 중인 자신조차도 평범한 대학생 복장인 흰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인데. 저런 거지꼴을 하고 나타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얼굴은 평소의 귀티나는 얼굴 그대로라 오히려 변장한 게 티가 날 정도로 괴리감이 들었다.

“미안하지만 다자이, 사실 그 복장 하고 싶었던건가?”

“어떻게 알았지? 실은 말이야, 잠입 수사를 해보고 싶었다네. 사실 오다사쿠만큼 삭은 얼굴로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숨어 들어가는게 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난.”

대화가 통하지 않자 오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는 마저 자신이 가진 정보들을 말해주었다. 다자이는 필기구 하나 없이 고개조차 끄덕이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었지만 그가 잊어버릴 수 없다는 걸 아는 오다는 신경쓰지 않았다 무표정일 때는 말도 못 걸게 무서운 얼굴이지만 웃으면 바로 헤죽이며 풀리는 얼굴. 오다가 그런 다자이를 뚱하니 보고 있자니 다자이가 손을 뻗어 오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암호 같은 거 정해서 만나고 그런거 없나?”

“서로 얼굴 아는데 뭐하러 굳이.”

“후후, 그 점이 자네의 미덕이지만 좀 더 귀여운 반응을 기대했다네. 아무튼 얼른 끝내고 돌아오게. 3월 4일에는 아마 만날 수 있겠지 뭐. 자네가 없으니까 경찰국이 무척 심심해.”

“내가 있어도 심심하기는 마찬가지인게──.”

“됐어 됐어. 얼른 일 끝내고 돌아오기나 하게.”

입을 비쭉 내밀고 툴툴거리던 다자이가 손을 방방 흔들었다. 얼떨결에 마주 손을 흔들어주던 오다는 멍하니 다자이기 사라진 빈 자리를 바라보며 눈을 깜박였다. 자신이 이쪽으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이렇게밖에 못 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눈만 데룩데룩 굴리던 오다다 다자이의 빈 자리에 새삼 섭섭함을 느끼고 있다는 걸 자각하기 직전에,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