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 - 8/27

• 유쥬님과 이야기 중 탐태재와 파트너의 관계 관련 단상의 공양
• 탐정사 입사시험 후 어드메의 시기

쿠니키다 돗포는 이상을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이다.

이상이 현실에 끌어내려지는 순간부터 이미 이상이 아니지 않나? 짐짓 시비를 걸듯 반문하는 파트너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친다. 입에서 나오는 대부분이 잔뜩 포장된 장광설인 남자는 종종 정곡을 찔러오곤 했다. 너무 얄미워서 반박하고 싶어도 마땅히 대꾸할 말이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언어폭력.

하지만 이상이 현실에 떨어진다 해도, 이상을 이상으로 지키려고 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대단히 거창한 뭔가를 내걸고 이루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우선, 쿠니키다 돗포라는 개인으로서는 이상수첩에 적힌 계획을 수행하는 것부터 시작이었고, 그 이정표에는 평일 정시출근 정시퇴근 같은 일과도 포함인 것인데······.

쿠니키다는 무장탐정사로 오르는 계단 마지막 층계에서 멈춰섰다. 입구의 천장 대들보에 재주좋게 건 올가미 밧줄에 목을 매달고, 천장에 걸린 거미마냥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는 넝마자루 같은 것이 보였다. 오늘도냐, 속으로 혀를 찬 쿠니키다는 문답무용으로 품안의 수첩 종이를 꺼내면서 외쳤다.

“돗포 시인, 와이어 건!“

화려한 빛과 허공을 가른 와이어가 밧줄을 가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떨어지면서 사무실 앞 복도에서 구르는 길고 호리호리한 물체의 정체는 다자이 오사무였다. 목이 졸리면서 질식한 탓에 정신을 잃고 있는 다자이를 쿠니키다는 한심한 눈으로 내려다 봤다.

얼마 전 화려한 입사시험을 치르고 정식으로 탐정사원이 된 신입, 다자이 오사무는 자살벽이라는 몹쓸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선배로서 타이르기도 하고, 파트너로서는 윽박도 지르고 화도 내보았으나 이 민폐남은 도무지 자살습관을 버릴 생각이 없어보였다. 어디에서나 자살시도를 하는 걸 그만둘 수 없다면 적어도 회사 건물에서는 삼가하면 안되겠냐는 부탁에는, 다음날 보란듯이 목을 맨 채로 출근인사를 대신하는 아주 망할 놈이기까지 했다. 회사 건물에는 무장 탐정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른 새벽에 활동하는 건물 청소부나, 신문 배달원, 혹은 일찍 출근한 선량한 일반 사무원들이 이 광경을 보고 심한 트라우마에 빠져 그만두거나 항의가 들어오게 되자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만약 무장 탐정사가 일반 회사였다면 다자이를 자르면 명쾌하고 확실한 해결이 되었겠으나 탐정사 입사시험을 통과해 일할 수 있는 이능력 조사원은 드물고, 유능하기까지 하다면 더욱 가능성이 희박했다. 불행하게도, 다자이 오사무는 본인의 민폐력과 별개로 세 가지 경우에 모두 해당하는 인재였다. 결국 쿠니키다가 이 뒷수습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의 일정]

07 : 45 : 붕대낭비장치회수완료

⁃ 08 : 00 : 출근

언제부터 정시출근 전 다자이를 회수하는 것이 하루일과가 되었을까. 쿠니키다는 수첩에 죽죽 줄을 그으며 잠시 인생에 회의를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시계를 확인하고 만년필을 가슴 포켓에 꽂아넣었다. 8시 정각.

—자, 일할 시간이다.

*

“다자이.”

동반자살은~ 혼자서는 할 수 없어~ 따위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무실 소파에 늘어져 게으름을 피우던 다자이를 물끄러미 보던 에도가와가 드물게 그를 불렀다. 뜻밖의 호출에 다자이도 귀에 낀 헤드셋을 벗고 무거운 허리를 일으켰다.

“네, 란포 씨.”

“뭐든 적당히 즐겨.”

얼핏 들으면 나태한 후배의 불성실한 근무 태도를 지적하는 듯 했다. 그러나 주어는 없어도 주체가 분명한 말이었다. 다자이는 멋쩍게 뺨을 긁었다.

“지나쳤나요?”

“응.”

“란포 씨가 그렇다면야.”

나라 제일의 명탐정의 충고는 다자이라 해도 허투루 넘길 수 없었다. 그게 아니라도 직장상사 겸 선배의 말은 따르는 것이 후배가 할 일이다. 순순히 긍정하는 다자이의 속내를 읽은 에도가와는 실소를 머금었다.

“뻔뻔하기는.”

“앗, 너무하시네요.”

저도 사람이라 상처 받거든요······ 눈을 내리깔며 풀죽은 소리를 내는것이 수려한 외모와 더해져 쓸데없이 가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디까지나 가해자인 주제에 꼭 피해자마냥 구는 모습이 하 애처로워, 사정을 모르는 이가 봤다면 충분히 흔들릴 법 했다. 하지만 상대는 에도가와였다. 무기질한 시선으로 무언의 질책을 받은 다자이가 과장된 몸짓으로 연기하던 것을 그만두고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궁금해져서요.”

지금까지 다자이와 얽힌 이들은 그의 전적을 익히 알고 있었다. 다자이 본인도 누구가 가까워지는 걸 원치 않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은 필요이상으로 깊은 관계가 되는것을 꺼렸다. 어둠을 아는만큼 멀리하고 싶은 법이므로. 누군가는 알고 있는만큼 관여하지 않는 것을 택했고, 누군가에게는 이해받았다 깨달은 순간 나눌 기회가 영영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조금 궁금해졌다. 백지에서 시작된 관계라면, 조금은 달라지는건지. 이상을 말하는 이가 진실을 알게 되었을때도 같을 수 있을지가. 하아, 에도가와가 질린 기색으로 짧은 감상을 내뱉았다.

”너, 정말 최악.”

“아하하. 그런말 자주 들어요.”

다자이는 여상스럽게 웃었다.